본문 바로가기

독해진수학/교육학, 수학교육학 관련 생각들

절대주의 vs 상대주의

728x90
반응형

 

절대주의와 상대주의가 과거 수학의 역사의 큰 흐름을 분류한 단어가 될 수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절대주의는 수학하면 생각할 때 "수학은 정확해!"라고 말할 때 쓰는 표현과 일맥상통하다.

그에 비해 상대주의는 조금은 부정확하다는 표현, 혹은 오류 가능성을 포함한다거나 정확하다고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얼추 비슷하다.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유클리드 원론 등 우리가 배우고 있고 혹은 배웠던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을 생각하게 된다.

수학교육과의 많은 친구들이 이러한 절대주의?! 아니면 정확한 과목의 매력에 매료되어 와서 다소 실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주의는 ('정확성'이라는 조금 애매한 단어를 정확하게 대변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지만 친숙한 단어이므로 사용하겠다.) 수학이 발전하면서 정확성에 대한 의심이 들고 그 사실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것이 상대주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절대주의를 붙들고 극복해보려는 시도가 있었으니....

 

그것이 논리주의, 직관주의, 형식주의 등의 흐름이 있었다.


이런 걸 설명하려고 한 건 아니니까

어쨌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또 수많은 의견으로 상대주의로 넘어오게 되었다.

 

상대주의는 대부분 이러한 주장을 한다.

지금까지 그 주장의 근거는 오류가 없으니까 설득력이 있는데?!

 

그것이 정확하다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정확성에 대해서 한 걸음 물러나서

단순히 그 주장이 설득력이 있고 아직까지는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수학에서???

 

어쩌면 이러한 작은 움직임이 현재는 수학에서도 컴퓨터의 계산을 근거로 받아지는데 기여를 하지 않았을까?!


이제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절대주의인가 상대주의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나라는 사람은 정확하게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가?

10년을 살았던, 20년을 살았던, 30년을 살았던,

세월로 날 규정할 수 있는가?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사람이 내일 바꾸려고 노력한다면 하루 만에 자신을 규정하는 것은 변하는 것이 아닌가?!

 

수학에서 상대주의는 생각보다 많은 희생이 있었으리라 역사 관련 내용을 읽어보니 합리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을 절대주의에서 상대주의로 바뀌려면 어떤 희생이 있어야 하는가?

 

어쩌면 상대주의는 상대방의 주장을 겸손하게 듣고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태도에서 빛이 난다.

 

나 자신을 규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론 경청의 자세를 가지고 낮은 자세로 자신을 더 좋은 단계로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728x90
반응형